삼성전자·SK하이닉스, 1.5조원 넘게 사들였는데도 주가가 떨어진 이유

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이면 보통 주가에는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시장에 나오는 주식을 회사가 직접 사들이면서 수급을 받쳐줄 수 있고,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월 2일 국내 증시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1조5000억원이 넘는 자사주 매입성 자금이 들어왔는데도 두 회사 주가는 나란히 4%대 하락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4.02% 떨어진 25만500원, SK하이닉스는 4.73% 하락한 161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회사가 대규모로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상황에서도 주가가 크게 떨어진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칩과 주가 급락 그래프를 표현한 이미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기 주식을 사는 이유

자사주 매입은 말 그대로 기업이 시장에 나와 있는 자기 회사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것입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낮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주주에게 회사의 이익을 돌려주는 주주환원 정책의 하나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서 증시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9월 2일 기타법인은 삼성전자를 약 4966억원, SK하이닉스를 약 1조610억원 순매수했습니다. 두 종목을 합치면 약 1조5576억원입니다. 이날 예정됐던 자사주 매입 규모와 비슷해 상당 부분이 자사주 매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이 정도 규모의 매수세는 주가를 받쳐주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1조5000억원 넘는 매수에도 주가가 떨어진 이유

가장 큰 이유는 해외에서 불어온 악재가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습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4.79% 부근까지 상승했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금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높은 금리는 반도체와 AI 같은 성장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증시에서도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였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 넘게 하락했고 마이크론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관련 종목들도 떨어졌습니다.

이 영향이 국내 시장까지 이어졌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약 3330억원과 7526억원을 순매도했고, SK하이닉스에서도 외국인이 약 1조685억원, 기관이 약 4801억원을 순매도했습니다.

기업이 자기 주식을 열심히 사들였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더 강하게 팔면서 주가 하락을 막지 못한 셈입니다.

자사주를 사면 주가는 반드시 오를까

이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움직임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사주 매입은 분명 주가에 긍정적인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자사주를 산다고 해서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실적과 향후 성장 전망은 물론이고 외국인 수급, 금리, 환율, 국제유가, 전쟁과 같은 외부 변수까지 주가에 동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번 자사주 매입이 없었다면 주가 하락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최근 국내 증시의 하단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관심 있게 볼 부분은 두 회사가 남은 자사주 매입을 얼마나 이어갈지,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가 다시 국내 반도체주를 사들이기 시작할지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제 국내 증시를 넘어 AI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 기업이 됐습니다. 그래서 두 회사의 주가 움직임을 볼 때도 기업 자체의 실적뿐 아니라 미국 금리와 국제유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까지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1조5000억원 넘게 사들였는데도 주가가 4% 넘게 떨어졌다는 것. 오늘 시장은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외부 변수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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