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는 분명 '위탁계약'이라고 적혀 있고 월급 대신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회사가 계약을 끝내도 단순한 계약 종료일까요?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눈여겨볼 만한 판단을 내놨습니다.
온라인 학습지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일해 온 회원가입 상담교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종료를 부당해고로 판단한 것입니다.
특히 프리랜서, 위탁직, 상담원, 방문강사처럼 근로계약서가 아닌 다른 형태의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년 계약을 8년 반복했는데 갑자기 계약 종료
이번 사건의 A씨는 온라인 비대면 교육 서비스 업체와 1년 단위 위탁업무계약을 체결하고 학습지 회원가입 유선 상담 업무를 했습니다.
이런 계약을 약 8년 동안 계속 갱신했습니다. 고정급을 받는 방식도 아니었습니다. 상담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는 계약 만료일이 되기 전에 경영 악화와 실적 저조 등을 이유로 A씨에게 위탁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처음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회사 측 판단이 받아들여졌지만 재심을 맡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계약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일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중노위가 '근로자'라고 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A씨는 회사가 정한 방식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정한 업무 집중 시간대가 있었고, 회사가 정한 학습상담 업무규정을 적용받았습니다. 해당 규정에는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업무에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회사가 제공했고 통화 녹취 시스템과 메신저 등 전자시스템을 이용해 업무가 관리됐습니다.
무엇보다 A씨가 담당한 회원가입 상담은 회사 업무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일이었고 업무 내용도 회사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중노위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A씨가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한 근로자라고 판단했습니다.
고정 월급이 없다는 점도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A씨는 실적에 따라 매월 수수료를 받았지만 비슷한 상담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 상담교사 역시 상담업무에 대해 유사한 방식의 실적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중노위는 A씨가 받은 돈 역시 실제 노동에 대한 대가인 임금의 성격이 있다고 봤습니다.
프리랜서·위탁계약이라면 모두 근로자가 될까?
여기서 가장 조심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결정이 '위탁계약을 맺은 사람은 모두 근로자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프리랜서인지 근로자인지를 판단할 때는 계약서 제목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근무 형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 회사가 출퇴근이나 업무시간을 정하는지
- 업무 방법을 회사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지
- 회사 규정을 따라야 하는지
-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제재가 있는지
- 회사 시스템이나 장비를 이용하는지
- 업무 과정에서 지속적인 관리·감독을 받는지
- 받는 돈이 실제 노동에 대한 대가인지
이런 요소들이 근로자성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A씨가 1년짜리 계약을 반복하면서 약 8년 동안 계속 일했다는 점입니다.
중노위는 이러한 근무기간 등을 고려해 A씨를 기간제법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했고,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종료가 경영상 해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부당해고로 판정했습니다.
결국 계약서에 '위탁',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요즘에는 학습지 교사뿐 아니라 방문강사, 상담원, 플랫폼 종사자 등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볼 때 '나는 프리랜서니까 회사 직원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기보다 누가 업무시간을 정하는지, 누가 업무방법을 결정하는지, 실제로 누구의 지휘를 받아 일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중노위 판정이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은 위탁계약이었지만 실제 일하는 방식은 근로자에 가까웠고, 중노위는 계약서의 이름보다 그 실질을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 근로자성 여부는 계약 명칭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실제 업무 형태와 지휘·감독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개별 사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